푸드 서울

설렁탕에도 ‘명품’이 있다

입력 : 2012.07.05 09:18

설렁탕은 본래 서민의 음식이었다. 뼈와 내장, 고기를 오래 끓여낸 설렁탕은 저렴하지만 고깃국 축에 끼었다. 장터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끼리 그 동안의 안부를 반찬 삼아 나눠먹었던 음식. 비슷한 국밥이면서 고기 위주로 만든 곰탕을 윗길로 쳐줄 정도로 설렁탕은 아주 서민적이었다. 정부는 오랫동안 설렁탕을 생활물가지수 측정 품목으로 삼았다. 그만큼 대중의 입맛에 맞는 친근하고 저렴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의 덫에 걸린 설렁탕은 더 좋은 음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서민적 이미지가 워낙 강한 설렁탕을 고품격 프리미엄 급 명품 메뉴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집이 있다. ‘벽제한우설렁탕’ 그 속엔 세계를 향한 한식 중흥의 의지도 엿보인다.

엄격 기준 통과한 포천 1++등급 한우로 끓여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다. 고품격 제품에 대한 생산의지, 좋은 재료, 고도의 기술력이 결합해야 비로소 뛰어난 명품이 탄생한다. 좋은 재료와 고도의 기술력은 그 자체로 고비용을 의미한다. 명품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설렁탕 값은 국민들 머릿속에 ‘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다. 현실에서 식재료비는 치솟는데 그 원가를 반영했다간 외면 받기 십상이다. 국민 정서상 용인되는 가격수준에 맞추다 보니 설렁탕의 질은 자꾸만 추락했다.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암묵적으로 늘 그저 그런 설렁탕만 만들고 먹어왔다. ‘벽제한우설렁탕’은 이 부분에서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태리 국민음식 파스타는 세계인의 식탁에서 사랑 받는 명품으로 재 탄생했다. 우리 설렁탕이 파스타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파스타도 원래 이태리 서민들이 저잣거리에서 먹던 대중적 패스트푸드 아니었던가!

명품 옷의 생산은 질 좋은 원단에서 시작한다. 명품 설렁탕은 질 좋은 소가 있어야 가능하다. 원단의 질이 옷의 품질을 좌우하듯 식재료의 질과 신선도가 음식의 질을 결정한다. 이 집은 경기도 포천의 계약농장에서 한 달에 한우 40마리씩을 구입, 도축과 동시에 설렁탕의 식재료로 쓴다. 출하한 전체 소의1++등급 출현율이 일정기준을 넘지 못하면 구매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깨끗한 환경에서 깨끗한 물과 사료를 먹여 키운다고 한다.

소고기 육질은 암컷이 수컷보다 좋다. 그러나 소뼈는 수소가 암소보다 더 뛰어나다. 수소 중에도 너무 어린 소나 늙은 소보다 30개월 정도의 젊은 수소가 뼈의 골밀도가 조밀하고 고소한 맛도 진하다. 한우는 해외 도축과 통관 과정이 필요 없어 고객에게 신뢰도와 선호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비싼 1++등급 한우만을 설렁탕 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불 옆에서 밤 지샌 장인의 땀으로 끓인 ‘14시간 초벌 설렁탕’

명품 옷은 명장이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만든다. 명품 설렁탕 역시 명장 조리사의 땀이 배어있다.

소머리는 손질 여하에 따라 가장 맛 있는 국물 재료일 수도 있고, 가장 맛없는 재료일 수 있다. 일단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핏물을 빼낸다. 도축하면서 코 속에 고인 구토물, 코 주위의 뼈, 필요 없는 막이나 기름, 귓속 이물질 등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이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섬세함이 요구된다. 생략하거나 소홀히 하면 잡내와 누린내가 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설렁탕 집에서는 이 작업과정을 대충 넘긴다. 결국 섬세함의 차이가 맛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 집에는 설렁탕 제탕 명인 한영석 씨가 숙련된 솜씨로 소머리를 손질한다. 사골은 구수한 맛을 내고 소머리 뼈는 시원한 맛을 내준다. 이 밸런스가 잘 잡혀야 국물이 시원하고도 깊은 맛을 낸다.

소머리와 사골을 넣고 끓이면 살과 뼈에서 나온 불순물이 위로 뜬다. 아무리 깨끗이 핏물을 빼내고 손질해도 그렇다. 이 불순물을 가마솥 옆에 서서 계속 건져내야 한다. 이 부유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누린내와 잡내 뿐 아니라 국물의 색깔도 탁해진다. 국물이 끓는 중간에 소금을 넣거나 금속제 국자, 뜰채 등을 오랜 시간 솥에 잠가두면 국물이 삭아버린다. 작업을 하면서도 조리사가 조심하는 부분이다.

몇 시간이고 끓이다 보면 국물이 줄어든다. 이때 물이 줄어든 솥의 내벽 부분에도 찌꺼기가 눌어붙어있다. 이것도 행주로 깨끗이 닦아내야 한다. 역시 누린내와 잡내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양지는 우설을 넣고 따로 끓여서 마지막에 국물과 함께 더 끓여서 완성한다.

설렁탕의 생명은 국물이다. ‘벽제한우설렁탕’의 국물은 14시간 동안 한 번에 끓여낸 이른바 ‘한우초벌설렁탕’이다. 조리사가 펄펄 끓는 가마솥 옆에 14시간을 지켜 서서 건져내고 닦아내고 물 붓고 맛을 낸다. 우리가 생각 없이 하루 세 번 대하는 음식은 모두 만든 이의 고된 노동과 정성의 결과물이다. 그 중 설렁탕만큼 조리사의 수고로움이 많이 들어간 음식도 드물다. 몇 십 kg씩 되는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들거나 옮기면서 뜨거운 열기 내뿜는 가마솥 곁에 긴 시간 붙어있어야 한다. 노동 강도가 센 것도 그렇지만 불 옆에 서서 계속 작업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집 ‘벽제한우설렁탕’ 값 1만 2000원에 수긍이 간다.

맑고 시원한 감칠맛의 85℃ 한우설렁탕, 세계인 건강식 위상 노려

정성 들여 만든 설렁탕은 고객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도를 고려, 주방에서 85℃에 맞춰 내온다. 설렁탕을 전용 자기 뚝배기에 담는데 목재 그릇 틀 안에 미리 달군 금속 가온재가 들어있어서 손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국물이 식지 않게 배려했다.
콜라겐이 풍부한 볼살과 얇게 저민 양지 살을 발 좋은 국수 가락에 올려 함께 먹는 맛. 이게 설렁탕이다. 담백한 감칠맛이 난다. 국물 떠먹으니 시원하고 개운하다. 육안으로 봐도 국물이 맑다. 흔히 탁한 국물을 진국으로 아는 사람이 더러 있다. 너무 오랜 시간, 여러 차례에 걸쳐 끓이면 소 뼛속의 인(p)이 용출된다. ‘벽제한우설렁탕’ 김영환 대표는 ‘14시간’이 소뼈의 영양과 고소한 맛의 최대치를 얻을 수 있고, 뼈에서 인 성분이 용출하기 직전의 지속 한계시간이라고 한다. 과다한 인의 섭취는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설렁탕과 함께 먹는 섞김치는 무와 배추를 함께 섞어서 만든 김치. 배추김치를 선호하는 손님과 깍두기를 선호하는 손님 모두에게 만족감을 준다. 3일에 한 번씩 담가 젓산균이 최고치에 이를 때 상에 올린다. ‘14시간 설렁탕 국물’과 함께 먹으면 뭐 더하고 뺄 것이 따로 없다.

최근 ‘벽제한우설렁탕’이 외국인 출입이 잦은 삼청동에 점포를 새로 열었다. 대한민국 마더 수프, 설렁탕 국물 맛을 외국인이나 외국 관광객에게 맛 보이기 위한 포석이라고 한다. 이 집 가마솥에는 장터에서 지인과 정을 나누던 설렁탕에서 세계인의 건강식으로 그 위상을 바꿔보겠다는 야심이 끓고 있었다.
‘벽제한우설렁탕’ 서울 종로구 팔판동 02-732-2543

글·사진: 월간외식경영 이정훈 기자, 변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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