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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현대’와 죽이맞다

입력 : 2012.07.10 09:12

입안이 껄끄럽고 몸이 아플 때 접하는 음식이 있다. 생김새부터 부드러운 죽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죽을 보양식으로 먹었고 예전에는 아플 때 먹는 음식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웰빙식이자 영양식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다양한 퓨전 죽이 나타나면서 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간편한 한 끼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최근에는 점심 메뉴로 죽을 선택하는 직장인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죽은 우리와 죽이 참 잘 맞는 메뉴다.

한국 식문화에 담긴 죽

죽은 부드럽고 담백하다. 아픈 속을 달래고 편안하게 해준다. 몸에 이로운 죽이지만‘죽’하면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흔히 사용하는‘죽을 쑤다’가 그것. 죽을 쑤다는 어떤 일을 망치거나 실패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조밥을 하는 시간을 넘겨서 밥을 못 먹게 되었다는 상황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 식은 죽 먹기’등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곡식에서 유래된 말이 많다. 이는 농경 사회로 오랜 시간 살아왔기 때문이다. 죽은 우리의 세시풍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세시풍속은 대체로 농경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 농경의례라고도 한다. 24절기 중에서 가장 밤이 길고 낮이 짧은 동지에 팥죽을 먹는다. 팥죽이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팥죽을 흔히 동지 죽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죽은 한국 식문화에서 오랫동안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죽, 조선시대 히트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다

죽은 우리의 먹거리 중 가장 일찍부터 발달한 주식 중 하나다. 농경문화가 시작된 신석기 시대 토기에 물과 곡물을 함께 넣어 끓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에는 일부 귀족층의 기호품으로 우유를 넣어 만든 타락죽이 인기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이 죽을 많이 즐겼다고 전해진다. 이덕무의「청장관전서」에는‘서울의 시녀들이 죽 파는 소리가 개 부르는 듯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미 조선시대에 죽은 보편적인 일상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아침에 밥 대신 죽을 먹었다.

「 임원경제지」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죽 한 사발을 먹으면 곡기가 일어나 위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으며, 부드럽고 매끄러워 위장에 좋다’고 나와 있다. 「동의보감」에도 백죽이라고 해 조반으로 죽을 먹으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기록되어있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도 다양한 종류의 죽이 나온다. 많은 임금들이 이른 아침 위장을 보호하기 위해 조반으로 죽을 먹었다. 물에 불린 쌀을 갈고 물 대신 우유를 넣어 타락죽을 만들어 초조반이나 낮것상, 야참으로 자주 올렸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궁중 내의원에서 음력 시월 초하루부터 정월까지 왕에게 타락죽을 진상했다고 나와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은 물론이고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죽이 보편화됐다. 죽의종류가 무려 17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했다. 구황 음식, 몸이 허한 사람의 보양음식, 노인 공양식 등으로 쓰임새가 많았다.

또한 죽은 곡식이 부족하던 때 밥 대신 먹었었다. 물과 함께 넣고 불리면 양도 많아질뿐더러 갖은 나물을 넣어 구황 음식으로인식되기도 했다. 가난한 시절, 적은 양의 곡식으로 여럿이 나눌 수 있었던 최적의 메뉴였다.

모양은 하나지만 명칭은 여러 개

미음, 응이, 암죽 등 죽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많다. 사용하는 곡물과 조리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모두 곡식으로 만든 죽을 지칭한다. 가장 익숙한 미음은 죽과 비슷하지만 체에 걸러 식감이 더 부드럽다. 알갱이가 거의 없어 소화력이 약한 환자에게 좋다. 의이와 응이는 어떤 곡식이든지 갈아서 나온 앙금으로 쑨 죽을 말한다. 원미는 조리방법이 다르다.

곡식을 맷돌에 갈아 만들기 때문. 거칠게 갈아 입자가 굵다. 암죽은 곡식이나 곡식가루를 밥물에 타서 끓인 것이다. 이유식과 비슷해 어린아이와 노년층이 주로 먹었다.
한국에만 죽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에도 칸지congee라고 불리는 죽이 있다. 걸쭉한 한국의 죽과 달리 묽은 것이 특징이다. 육수를 베이스로 해 끓이고 죽 위에 여러 고명을 얹어 다양하게 즐긴다. 주로 중국인들은 칸지를 아침식사로 먹는다. 서양에도 죽과 비슷한 모양으로 오트밀이 있다. 그리스에서 빵이 전해지기 전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주식으로 죽을 먹었다.

제분하지 않은 보리, 밀, 귀리로 만든 음식이 오랫동안 서민들의 주식이었다. 영국 아침식사에 나오는 오트밀도 게르만 민족의 식습관에서 유래했다. 지방에 따라서는 조, 밤, 메밀, 옥수수 가루도 죽에 사용했다.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죽에 주목하라

예전 죽은 부드러운 식감으로 건강 회복에 초점이 맞춰진 메뉴였다. 하지만 죽 전문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면서 든든한 한 끼 식사메뉴로 이미지가 전환되었다. 최근에는 웰빙 바람을 타고 신선한 건강 식재료를 넣은 웰빙 죽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무엇보다 소화가 잘 돼 속을 편하게 만들어줘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환자를 위한 메뉴의 이미지를 탈피하면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죽에 들어가는 채소는 약리효과를 유발한다. 채소의 섬유질은 변비를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각각의 필요한 영양소에 맞는 식재료를 넣어 다양한 맛을 구현할 수 있다.

소화가 잘 되는 죽은 적은 열량 섭취를 요하는 다이어트 메뉴로도 평가받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죽 다이어트가 성행하고 있다. 죽은 쌀 등의 곡식에 물을 많이 붓고 오랫동안 쑤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알갱이가 잘 풀어져 소화가 잘 된다. 또한 주재료인 곡식이 속을 보호하고 포만감이 커 한 끼 식사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아침에 한국 죽집을 찾는 경우도 많다.

죽은 웰빙식, 환자식의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식사 메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 죽 전문점에서는 하얀 죽이 아닌 빨간 죽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삼삼한 맛 위주의 일반 죽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가미한 것이다. 속을 달래던 죽에 김치, 고춧가루 등을 넣어 해장죽으로 변신해 얼큰하게 속을 풀어주기도 한다. 고객이 선호하는 맛과 식재료를 사용해 특별한 환자식이 아닌 일반식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후식, 혹은 간식 메뉴로도 각광받는다. 팥죽과 호박죽 등은 끼니가 아닌 간식으로도 선호한다. 죽 자체가 부담 없어 먹기 편하다. 또한 단맛이 있어 한식 코스요리에서 디저트로 내도 무리가 없다.

죽의 변화가 한국 외식시장에 자연스럽게 침투할 수 있는 것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알맞기 때문이다. 죽은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메뉴를 한국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상황에서 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곡식을 주식으로 해온 한국인에게 밥은 최적의 웰빙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쁘고 소화불량 증상이 빈번한 현대인들에게 죽은 몸을 편안하게 하면서 필요한 영양소를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메뉴다.

글·사진 제공 : 월간외식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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