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서울

[맛난 집 맛난 얘기] 저렴하지만 반가의 기품 물씬 나는 한우소고기국밥

입력 : 2013.01.11 09:12

가장 맛있게 먹었던 국밥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몇 살 때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린 시절, 서울 선릉에서였다. 양력 12월 24일은 성탄절 이브지만 음력으로는 조선 9대왕이었던 성종대왕 기신제향일(忌辰祭享日), 즉 제삿날이다. 어렸을 적에는 이 때마다 집안 어른들을 따라 선릉에 갔다.  ‘영동지구’ 가는 버스를 타고 눈 덮인 산길에 내려 밭두렁을 지나 능역에 들어섰다. 집례의 구령에 따라 엎드리고 절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손이 시리고 귀가 아팠다. 저절로 몸이 떨려오고 배가 고팠다. 제사가 끝나면 집안 식구끼리 둘러앉아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씩을 먹었다. 그때 엄동설한 꽁꽁 언 속을 확 풀어주었던 뜨끈한 소고기국밥의 기가 막힌 맛은 무어라 형언할 길이 없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는 바쁘다는 핑계로 선릉 제향에 참석하지 않았다. 찬바람 부는 설원에서 신발과 외투를 벗고 돗자리 위에 한참 서있는 것 자체가 고행이었다. 그러나 꿀맛 같았던 소고기국밥 맛은 그 후로도 작지 않은 유혹이었다.

참 오랜만이네! 갓 지은 쌀밥의 구수한 맛

국밥은 역시 추울 때 먹어야 맛있다. 차가운 날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솥을 보면 저절로 마음까지 든든해지게 마련이다. <맛보고 갈비둥지>의 한우소고기국밥을 대하니 문득 선릉에서의 추위와 뜨겁고 진했던 국물이 떠오른다. 입구에 설치한 한 쌍의 국솥도 밖에 걸어놓았던 선릉의 국솥을 연상시켰다. 이 국솥은 예전 시골집에서 흔히 사용했던 무쇠 솥이다. 경기도 안성에서 4대에 걸쳐 무쇠 솥을 만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가 만든 솥이라고 한다.

	[맛난 집 맛난 얘기] 저렴하지만 반가의 기품 물씬 나는 한우소고기국밥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전자밥솥이 ㄱ자 모양으로 도열했다. 무려 10개의 밥솥에 시간 간격을 두고 소량의 밥을 계속 안쳤다. 언제 어느 때나 손님에게 막 지은 밥을 바로 퍼서 고슬고슬한 상태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반 식당의 미리 담아둔 공기 밥은 식거나 뭉쳐져 밥맛이 적다. 심할 경우 밥에서 묵은 내가 나는 집도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우소고기국밥을 주문했더니 날달걀이 나왔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달걀부침을 해먹으라는 얘기다. 식탁마다 가스레인지와 프라이팬을 미리 놓아두었다. 달걀은 크기가 작지만 영양이 많고 가격도 비싸다는 초란이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직접 만들어먹는 달걀부침은 맛도 맛이지만 직접 부쳐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괜찮은 떡갈비와 만두에 소면까지 덧거리로 제공

잠시 뒤에 나온 한우소고기국밥에 덧거리로 나오는 음식이 많았다. 잘못 주문한 게 아닌가 싶어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맞는다고 한다. 기본 반찬 이외에 떡갈비와 만두에 소면까지 나왔다.

이 집은 육류를 많이 취급한다. 거기서 나오는 자투리 고기로 직접 만들어 구운 떡갈비다. 만두에도 이 고기들을 넣고 빚어 그저 그런 전문점 만두보다 맛이 났다. 이쯤 되면 웬만한 간이 한정식 밥상이다. 그런데 가격이 7000원으로 무척 저렴하다. 더구나 2월 말일까지는 개점 기념으로 지금은 5000원을 받고 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밥값이다. ‘5000원짜리 밥이 오죽할까’하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가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 것 같다.

밥 공기와 국 대접이 예전 고향 집에서 썼던 놋그릇이었다. 고급스런 분위기가 식탁을 압도했다. 거창의 고급 유기장인이 만든 방자유기라고 한다. 이 집에서는 국과 밥뿐 아니라 냉면이나 비빔밥 사발도 유기로 쓴다. 국수에 떡갈비와 만두까지 나오고 놋그릇에 밥과 국을 받고 보니 마치 잔칫집 밥상을 받은 느낌이다.

	[맛난 집 맛난 얘기] 저렴하지만 반가의 기품 물씬 나는 한우소고기국밥
경북 문경의 반가 국밥에 맥 닿아, 쌀과 고춧가루도 현지서 조달

이 집 국밥은 주인장 나호섭 씨의 고향, 경북 문경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는 어렸을 적 먹었던 국밥 맛을 잊지 못해 그 맛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고자 했다. 즉, 영남 북부지방의 반가 음식을 본보기로 삼았다. 놋그릇도 어렸을 때 보았던 것과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 구해서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밥맛 좋은 이 집 쌀이 바로 그의 고향 마을인 문경군 영순면에서 재배한 것이다. 영순면에서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지은 쌀을 전량 수매해서 쓴다. 이 과정에서 쌀 공급자가 농민이다 보니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지 못해 세무상의 불이익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고향마을에 도움을 주고 고객에게 좋은 밥을 대접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할 만 하다고.

쌀은 4~5일마다 한 번씩 도정한다. 밥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도정 후 경과시간이다. 당연히 도정한 지 오래된 쌀은 산패되어 밥맛이 없다. 나씨의 고향에서 조달하는 식재료는 쌀뿐만이 아니다. 국과 찬류의 핵심 양념인 고춧가루 역시 경북 문경군 영순면의 농가들에서 수매한 것이다. 현지에서 말리고 꼭지를 따서 빻은 고춧가루다. 중국산 고춧가루를 넣은 국물은 대체로 텁텁하고 맛이 탁하다. 개운하고 맑은 이 집 국물 맛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물과 찬도 문경 고춧가루와 함께 7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간을 맞춘다. 문경산 쌀과 고춧가루에 양질의 소금, 재료의 차이가 결국 음식의 차이였던 셈이다.

생수로 한우 사골 국물 내고, 천연 효소 양념장으로 맛 내

구수한 밥과 함께 국밥의 핵심은 역시 국이다. 고기는 한우 1+ 등급의 사태와 양지를 쓴다. 한우 사골을 푹 고아 곰국을 내고, 다시 한 번 끓인 연한 국물로 국밥용 국을 끓인다. 국물 맛이 한결 부드럽고 진하다.

	[맛난 집 맛난 얘기] 저렴하지만 반가의 기품 물씬 나는 한우소고기국밥
국을 수돗물이 아닌 생수로 끓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 집은 식탁에 앉아 주문하면 처음부터 페트병에 든 생수를 준다. 식사가 끝나고 물이 남으면 생수 병을 가지고 가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객은 그냥 놓고 나온다. 바로 이 생수를 이용해 밥도 짓고 국도 끓인다. 좋은 밥맛과 국 맛의 기본은 역시 좋은 물일 수 밖에 없다.

국 끓일 때, 고기는 처음부터 넣지 않는다. 육수가 펄펄 달아오를 정도로 끓은 뒤에 사태와 양지를 넣는다. 그래야 핏물이 빠지지 않아 고기의 제 맛이 난다. 주 재료도 조직이 무르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타이밍을 맞춰 토란, 무, 파 순으로 넣어 끓인다.

고기와 재료들이 어느 정도 끓으면 마지막으로 양념장을 넣는다. 이 양념장은 나 대표가 직접 개발했다. 이 집에는 나씨가 오랫동안 실험과 연구 끝에 개발한 각종 산야초와 과일 효소가 많다. 그 중 한우소고기국밥 양념장은 40일 이상 숙성시킨 매실 효소를 넣어 만든다. 매실효소는 잡내를 없애주고 깔끔한 국물 맛을 내준다.

김이 나는 국 그릇에 흰 쌀밥을 말았다. 제 색깔을 잃지 않은 무와 파와 고기가 구미를 더욱 돋웠다. 수북하게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구수한 소고기 풍미에 혀가 나른해지면서 옛 시절이 떠올랐다.

모든 게 변했다. 선릉 주변 산과 들판이 지금은 강남의 번화가가 되었다. 요즘에는 능 제향이 끝나면 가까운 식당을 이용한다. 이젠 한 데서 솥을 걸고 소고기국을 끓이지 않는다. 꽁꽁 언 한강을 버스로 건너며 뜨끈한 소고기국밥 먹을 기대감에 부풀던 촌놈도 더는 없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 시절의 소고기국과 일가붙이가 함께 국밥을 나눠먹었던 추억이 그리워진다.

<맛보고 갈비둥지> 서울 도봉구 방학동, 02-3494-5585
기고= 글,사진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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