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경상·대구

1970~80년대의 회상(回想)을 담은 '함박스테이크'

입력 : 2013.09.25 09:00

[스토리텔링이 있는 맛집]
대구의 내력 있는 경양식집 <풀하우스>

대구 덕산동 화방골목 인근은 예전에 북적거리는 젊은이의 골목이었지만 요즘은 꽤 한산해진 듯 하다. 주변에 폐업을 한 가게들이 다수 있는 등 쇠락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지만 여기에는 70~80년대의 회상(回想)을 담을 수 있는 요리가 있다.

대구에서 나름 내력있는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금요일 저녁이지만 가게 안은 한산하기만 했다. 나비넥타이를 단정히 맨 선량한 인상의 중년 종업원이 앉아 있었으며, 그 얼굴에서 이상하게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가게 안 인테리어도 20세기 풍이다. 우리 일행 외에 50대 여성 3명이 식사를 하러 왔다. 아마 그들도 추억을 반추하러 오지 않았을까.

메뉴판은 보니 옛날 경양식집 메뉴 중 딱 한 메뉴가 없다. ‘하이라이스’. 요즘은 정말 하이라이스 파는 식당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이라이스를 젊은 20~30대에게 물어보면 거의 모를 것이다. 우리는 함박스테이크와 비후가스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빵이냐 라이스냐’하는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생략되었다. 지금은 2013년이라는 것을 깜박했다.


	식빵과 스프
음식 가격에 3000원을 더한 프리미엄 메뉴는 와인이 곁들여진다고 한다. 수프가 나왔다. 약간은 푸른색을 띠는 수프다. 맛있다. 예전 크림수프 맛이다. 푸른색은 파란 콩을 갈아서 넣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경양식집에서 이 수프를 아주 많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수프는 늘 감질나게 나왔다. 한식 국이든 양식 스프든 국물은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살짝 구운 식빵에 꿀을 칠해서 제공한다. 예전에는 모닝빵에 버터를 바르거나 아니면 함박스테이크를 빵에 넣어서 패티처럼 먹고는 했다. 샐러드는 지극히 평이하다. 그러나 채소를 가늘게 썰어서 충분히 먹을 만했다. 메인인 함박스테이크, 소스의 색이 눈에 들어온다. 브라운소스. 달걀프라이는 없다. 함박스테이크에는 달걀프라이가 정석인데 약간 아쉽다.


	함박스테이크
본격적으로 칼질에 들어갔다. 포크에 찍어서 먹었다. 육질이 비교적 연하고 부드럽게 입안으로 넘어갔다. 브라운소스 맛이 아주 괜찮다. 육류의 맛을 살려준다. 은은하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다. 함박스테이크의 맛을 제대로 살려준다. 비후가스 소스도 함박스테이크와 동일하다. 철판에 지글지글 구워서 나오는 시즐감은 없지만 이집 함박스테이크 제대로다.

기사식당 <다래함박>의 소스 맛은 시큼하면서 당기는 맛이 있지만 이 집 함박스테이크 소스는 은은해 당기는 맛이 있다. 격조가 있는 소스다. 나중에 카운터에서 업주에게 물어보니 간 고기(grind beef)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고 통 고기를 사서 레스토랑에서 직접 갈아 쓴다고 한다. 육질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함박스테이크가 이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인 것 같다. 경양식 원조인 일본의 경양식 레스토랑에서도 함박스테이크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이다.

함박스테이크, 떡갈비, 미트볼, 난자완스

떡갈비, 완자, 함박스테이크, 미트볼, 난자완스, 미트로프 등 각 나라마다 갈아 만든 고기음식에 대한 기본 수요가 있는 것 같다. 필자도 맛없는 스테이크보다는 이런 함박스테이크류가 더 입에 맞는다. 한국에서는 맛있는 스테이크 먹기가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 갈아 만든 고기(Grind beef)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소아적 미각인가보다.

예전에 대기업 식품회사 여자 임원이 신규 음식점 론칭 프레젠테이션에서 주먹만 한 미트볼(Meatball) 이야기를 할 때 공감한 적이 있다. 그런 주먹 크기의 미트볼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식감이 딱 감이 왔다. 그 여자 임원은 미국유학 시절 혹은 체류시절 개인적으로 여러 번 먹어본 미국 가정식 미트볼을 이야기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미트볼을 한식 고깃집에서 적용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육류가격이 한국보다 아주 저렴하다. 그리나 한식 고깃집에서 그런 미트볼을 좋아할만한 고객의 수요도 적거니와, 냉철히 분석하면 미트볼은 한식 고깃집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메뉴다. 결국 그런 언밸런스한 콘셉트의 고깃집을 대기업이 강남에서 몇 해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는 후문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 음악으로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가 나온다. 이것 참, 확실히 복고풍 레스토랑이다. 코코스, 스카이락 등 기업형 패밀리 레스토랑의 등장으로 이런 개인 경양식당들이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거의 몰락했다. 화방골목의 운명과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그 코코스, 스카이락 등도 다 사라졌다. 좀 더 개량된 아웃백스테이크나 베니건스 등이 나타났으나 이도 요즘은 하향 추세다.

경양식은 추억이다

경양식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다. 1980년대 초중반 필자가 다니던 대학교 앞에는 ‘준마’라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가끔 여기서 여학생을 만나면 주로 돈가스를 주문했다. 진짜 먹고 싶었던 음식은 함박스테이크였지만 가격이 더 비쌌다. 정말 돈이 없을 때는 오므라이스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고기의 두께가 아주 얇은 허접한 돈가스였지만 그때는 그것도 제법 성찬이었다. 서빙 하는 종업원도 격식을 갖췄고 대체로 친절했다. 경양식집은 식사와 커피를 같이 제공했기 때문에 오래 머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실 경양식집에서 나오면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데이트 비용으로 돈가스 먹는 것이 전부였으니.


	함박스테이크와 풀하우스 외관
계산을 할 때 여자 주인장에게 인터넷에 주소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전화로 가게에 주소를 물어봐서 차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주인장 왈, 그런 것 없어도 손님이 알아서 잘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 구사고(舊思考)는 약간 짜증나기도 했다. 1991년부터 오픈했다고 하니 아마 그 내력에서 나오는 자신감 같다.
<풀하우스> 대구시 중구 덕산동 127-22 (053)424-2210

글·사진 /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blog.naver.com/tabula9548)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외식업 컨설팅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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